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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Rohingya refugee

The story of Rohingya refugee

The story of Rohingya refugee

by admin Documentary, Exhibition March 05, 2019

The story of Rohingya refugee

Onbit documentary awarded. 

로힝야 난민의 이야기 (온빛상 수상)

 

 

 

MAR 27(WED)2019 ~ APR7(SUN)2019,              2019년 3월 27일(수) ~ 4월 7일(일)

Gallery Kyungbuk, Seoul, Korea

갤러리 경북,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6 원빌딩 4층, 02-737-8882

 

 

 

 

 

 

_작가 노트

 

괜찮아, 너네 집에 안 데려가도 돼

단순히 영국식민지 시절 앞잡이라고 일갈하면서 문제를 극단적으로 평면화 시켜 바라보는 냉소적 태도는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영국의 인도 제국시절 아라칸왕국과 버마의 꼰바웅 왕조때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독재 군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서 로힝야와 미얀마의 문제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펴보자. 그러니 난민 문제에 무턱대고 혐오감을 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로힝야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땅, 미얀마의 라카인주로 정당한 국적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것 뿐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주제이자 모든 것이다.

 

이번 난민촬영과 인터뷰는 캠프에 정착한 지 딱 1년이 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캠프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언론이나 인터넷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로힝야 문제들 즉 진짜 불법이주민인지, 또 방글라데시로 대거 탈주 할 정도로 미얀마 내 살인, 방화, 협박, 탈취 등의 문제가 존재했는지를 알아보는 것 또한 중요했다. 언론보도는 큰 사건의 개요를 훑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뭔가 피상적이며 구체적이지 않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촬영기간 중 만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한 질문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고향 또는 태어난 장소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대부분 라카인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태어난 장소였으며, 구체적인 마을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미얀마, 아니 이전의 버마 탄생을 바간왕조의 후예라고 쳐도 영국 식민지 시절을 제외하면 미얀마가 라카인주를 정치적으로 완벽히 지배한 기간은 18세기 말 42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포르투갈의 기록을 살펴보아도 17세기에 이미 라카인주에는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힌두교인, 불교도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불법이주민 취급은 다분히 현 미얀마 정부의 치부라는 생각이다. 현시점에서 최소 3대 이상 자국의 영토에 정착해 거주해온 사람들을 민족 단위로 분리해 국적을 박탈하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래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주장은 UN 창립 이후 최악의 소수민족 정책임에 틀림없다.

 

현재 로힝야 난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얀마밖에 없다. 인터뷰한 모든 로힝야들이 미얀마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같은 국민으로서 대우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단한 배상이나 금전적 요구가 아니라,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생명과 재산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함부로 죽임을 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국적을 달라는 것이 로힝야가 원하는 전부다. 인터뷰한 로힝야들은 자신의 고향이 미얀마이며, 방글라데시는 외국이라고 말했다. 생명과 재산의 보장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고단한 난민캠프를 떠나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인종청소나 다름없는 소수민족 탄압을 중단하고, 미얀마 내 로힝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교육과 제도를 통한 국가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런 미얀마식 로힝야 소수민족 해결방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분으로 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역사에 전무후무하다. 이런 폭력적인 해결방법을 국제사회가 묵과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도 소수민족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도 어떤 사회에선가는 소수민족 취급을 받을 수 있고, 그게 아니라도 이런 방식은 우리 사회가 지켜온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지향점을 향한 노력을 아무 의미 없는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우리와는 종교도 인종도 지리적 위치도 상관없는 로힝야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 집어치우고 생각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몇몇의 시선만이라도 이들을 향할 수 있게 한다면 내 사진의 쓸모는 다한 것이라 믿는다.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 캠프,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군담캠프에서 바라본 쿠투팔롱캠프의 전경이 낮은 구릉지대에 끈임없이 펼쳐저 있다

 

 

도로 보수공사를 하는 일용직 난민,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캠프를 관통하는 주 도로는 벽돌로 포장이 되어 있다

 

 

 

 

재봉일을 하는 사람,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하라다는 미얀마에서의 경력을 살려 옷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서 중고로 재봉틀을 구입했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아미르 후세인은 미얀마정부에서 발급한 여러 공문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캠프를 바라보는 남자,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알리 무사는 아홉명의 가족을 데리고 7일간 걸어서 국경을 건널수 있었다.

 

 

 

 

 

텐트 앞에선 사람, 2018,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

조리 나카튼은 옆마을이 불타는 소식을 듣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손주와 가까운 친척이 총에 맞아 죽었다.